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번엔 상속세 완화 제안을 들고 나왔다. 수도권 중산층이 세금 때문에 집을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상속세 최고 세율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대신 상속세의 공제한도를 상향하는 것으로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 일괄 공제액과 배우자 공제액은 28년 전 만든 것"이라면서 "그 사이 물가·집값이 다 올랐는데 (상속세) 기준만 그대로 유지하니 세금이 늘어났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상속세 완화가 감세가 아니라 증세를 막는 것이라는 논리다. 민주당은 최근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원에서 8억원으로, 배우자 공제액을 현재의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대로라면 18억원 아파트도 세금 한 푼 없이 상속이 가능해진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건 근대 이후 조세의 대원칙이었다. 상속으로 소득이 생긴다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속세는 노동소득에 따른 세금보다 오히려 낮다. 최고세율은 상속세가 50%이고, 소득세가 49.5%이니 비슷하지만, 공제금액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얻은 상속소득보다 일해서 얻은 노동소득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2023년 기준으로 사망자의 6.8%가 상속세를 납부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살만한 이들'이다. 더구나 이들 중 대부분이 매우 낮은 세율의 상속세 구간에 속한다. 그런데도 상속세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세금을 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들이 집요하게 주장을 반복하니 마치 무슨 문제나 있는 듯 착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대표의 입장에선 자신에 대한 중상층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줘서 인기를 얻으려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박탈감을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해서 이 대표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이 돌아설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더구나 민주당 지지층이나 의원단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런 시도가 무사히 이뤄질 것 같지도 않다. 괜히 지지층 내부의 분란만 일으키고 실익은 없는 캠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정부의 재정정책에 상당한 족쇄가 채워진 상황이다. 비록 이 대표의 제안이 1조원 이내의 세수 감소 정도에 그친다고 하지만 이렇게 감세정책에 한 발을 들여놓으면 꼭 필요한 증세는 아예 시도하기도 힘들어진다. 눈앞의 표심에 구애하다가 나라의 백년대계를 망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