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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문법도 틀렸는데 해명이 더 웃긴 한동훈의 영어 능력 논란

영어를 잘해서 법무부 장관을 시켰다는데(윤석열 주장이 그랬다) 알고 보니 기초 영문법도 모른다. 그래서 그걸 지적했더니 “설마 몰랐겠냐? 알고도 일부러 그랬다”란다. 이 정도면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개그를 더 잘하는 거 아니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주(12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정말 위험한 사람(Most Dangerous Man in Korea)’이라고 적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동아 의원이 “최상급 표현인 most가 형용사 부사를 수식할 때는 반드시 정관사 the와 함께 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이란 뜻으로 문장 자체도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했다는 게 이 스토리의 전말.

나는 사실 한동훈이 영어를 좀 틀렸다는 것에 딱히 위화감이 없다. 그냥 속으로 ‘영어 잘한다며? 웃긴 인간이네’ 하고 끝날 일이었다. 한국 사람이 영어 쓰다가 틀릴 수도 있는 거지. 최상급?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물론 영어를 안 써도 될 자리에서 굳이 영어를 쓰다가 굳이 틀리기씩이나 하냐는 의문은 든다. 잉글리시를 원데이라도 스킵하면 인 더 마우스에 니들이 돋는 캐릭터인가?

해명이 더 웃겼다

그런데 이 사건은 후일담이 더 웃기다. 보통 이런 지적을 받으면 “아, 내가 틀렸네” 하면 그만이다. 좀 쪽팔렸으면 글을 지우거나, 그게 싫으면 페이스북에 정관사 the 한 글자 추가하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한동훈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서 측근이 반발한답시고 한 말이 “MVP라고 말할 때 the를 붙이진 않는다. 이번에도 정말 위험한 사람이란 뜻으로 ‘MDMK’라고 따서 쓰려고 일부러 the를 생략한 것이다. 설마 최상급 문법을 우리가 몰랐겠나?”라는 것이었다.

이분들이 웃기려고 작정을 하셨나? 자, 한동훈 주장이 맞는다고 치자. 걔들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은 MVP처럼 MDMK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이재명 대표를 비난하려 했다는 거다. 그래서 MDMK가 뭔데? 앞으로 한동훈은 “이재명은 MDMK다. 여러분, 이재명은 MDMK라니까요. 놀라셨죠?” 뭐 이럴 예정이란 뜻인가?

국민의힘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한동훈 당시 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나서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2024.12.16. ⓒ뉴시스

혹시 내가 모르는 MDMK라는 약자가 있나 싶어서 구글에 검색까지 해봤다. 찾아보니 인도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약자가 MDMK라더라. 왜, 이제는 이재명 대표가 인도인이라고 주장할 참이냐?

줄임말을 정치 구호로 쓰려면 읽기도 편하고 뜻도 와닿아야 한다. 아무렇게나 줄인다고 트럼프의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구호가 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같은 네 글자지만 마가와 달리 엠디엠케이는 발음도 힘들다. 나는 8학군 출신으로 득권 호자 역할에 충실한 한동훈의 대권 도전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한동훈을 ‘강팔기수’라고 줄여서 비난하지 않는다. 강팔기수 한동훈! 이러면 누가 알아듣겠냐고?

한동훈의 발작 버튼

발작 버튼이라는 말이 있다. 유식한 말로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역린이란 정확히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고, 내가 보기에 한동훈은 용 근처에도 못 가니 그냥 발작 버튼이라는 말을 쓰겠다.

발작 버튼은 일종의 심리적 약점이다. 그래서 이걸 누르면 상대는 과민반응을 한다. 내가 우려스러운 것은 한동훈의 발작 버튼이 이상한 곳에서 작동하는 낌새가 있기 때문이다.

most 앞에 the 한 글자 붙이면 끝날 일이었다. 아니면 “영어를 실수로 적었다” 이렇게 쿨하게 넘어갔으면 넘어갈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다 MDMK를 갖다 붙이니 이 사람이 왜 이상한 곳에서 이런 무리수를 두나 의심이 안 갈 수가 없다.

내 추정이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에 자부심이 너무 강하다. 8학군 출신에 서울대 법대 나와서 검사 되고 여당 대표까지 출세가도를 달렸으니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똑똑하지 않다는 공격이 들어오면 발작 버튼이 눌러진다는 데 있다.

“사과하라”, “사퇴하라”는 의원들의 고함에 “내가 계엄했어요? 내가 투표했냐고요?”라거나 “반말하지 마시고요” 이렇게 발작을 하는 이유가 그런 거다. 자기가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그 잘남을 부정하는 공격에 자제가 안 된다.

하지만 정치인은 자기 잘난 맛에 취하면 안 된다. 민중들이 정치인 앞에 모여 “물러나라” 구호를 외쳤다고 하자. 그게 마음에 안 들 수는 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반말하지 마시고요. ‘물러나세요’라고 존댓말로 이야기해야죠” 이러고 자빠졌으면 그게 정치냐?

김건희라는 발작 버튼을 지닌 윤석열이 어떤 짓까지 하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다. 발작 버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았다. 나는 한동훈이 지도자가 되면 자존심이라는 발작 버튼 때문에 뭔 짓을 벌일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자가 절대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왕 시작한 김에 한동훈은 앞으로 정치 생활 내내 꼭 MDMK를 중요한 슬로건으로 앞세우기를 바란다. 그게 뭔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Most Dangerous Man in Korea의 약자인데 정관사 the는 MDMK라는 약자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안 붙였어요”라고 친절히 설명하고 다니고 말이다. 모쪼록 큰 성과 있으시길 비웃으며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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