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시킨 사실을 한국 정부가 두 달여간 모르고 있었다. 부랴부랴 정부가 미국 쪽을 접촉했지만 여전히 그 이유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핵무장론’과 ’12.3계엄선포’가 원인이라는 지적하는 가운데, 여당은 ‘이재명 탓’이라는 정치공세나 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미국의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되면 원자력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조치가 취해진다. 이 리스트의 공식 효력은 다음 달 15일부터 발생한다. 정부는 이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미국 정부가 공식확인을 하고 나서야 대책 수립에 나섰다.
17일 밤 외교부는 공지문을 내어 미국 쪽을 접촉한 결과 리스트 포함이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미측은 동 리스트에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부는 보안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요약하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했는데, 한국 정부가 사전 통보를 받지도 못했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저 기술협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립서비스’를 받은 모양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원인으로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연히 말해왔던 ‘자체 핵무장론’과 윤 대통령이 벌인 ’12.3 비상계엄’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 전부터 보수진영에서 핵무장론이 본격적으로 나왔고 미국이 이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줬다는 분석에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불안정한 정치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았다.
미국이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고 말을 해줬다지만 이유를 들은 것도 아니다. 외교부는 과거에도 한국이 리스트에 포함됐다가 철회된 적이 있다고 했는데, 효력발생 시점까지 시간은 촉박하다. 더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미국과 안정적인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이 문제가 ‘이재명 탓’이라고 들고 나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입만 열면 반미정서를 드러내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비난하며 북한 지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민주노총과 함께 거리로 나서고 있다”며 “이런 인물이 유력 대권후보라고 하니 ‘민감국가’로 지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일각에서 12·3 비상계엄과 탄핵소추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민주당의 집권에 대비해 민주당을 불신해 민감국가를 지정했다는 설도 있다”고 했다.
한미간 중대 외교사안이 발생했는데 그 책임이 정부가 아니라 야당 대표에게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무리 정권을 잃고 교체당할 위기에 몰렸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의 야당 정치인이 두려워 민감국가로 선포했다고까지 나가는 건 망상이다.
국민의힘은 입만 열면 한미동맹을 부르짖으면서 다른 쪽에서는 핵무장론을 공공연히 말하는 모순적 태도부터 돌아봐야 한다. 독자적 핵무장을 원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부터 새로 설정할 각오를 해야 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선거 때만 되면 보수표를 의식해 핵무장론을 꺼내드는데 그럴 거라면 민감국가는 물론 위험국가에 포함되더라도 추진하자는 결기부터 보이는 게 맞지 않은가.
여당은 미국에게 리스트 포함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는 기술협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덕담만 듣고 있어야 하는 처지를 개선시킬 고민부터 하기 바란다. 이번 사태마저 이재명 탓으로 돌릴 궁리를 하는 치졸한 정치는 무능의 다른 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