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는 “양향자가 누구더라?” 망설이시는 분도 있겠고 “뭐 그런 소소한 인간까지 칼럼 주제로 삼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도 있겠다.
맞는 말씀들이시다. 사실 나도 피식 웃고 말려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양향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런데 마침 양향자에 대한 아주 기분 더러운 추억(?)이 생각났다.
이번 대선에서 양향자는 거론할 가치조차가 없는 소소한 인물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지 딴에는 대선 경선에 나서겠다는데 기념으로 한마디 해주기로 했다. ‘옜다, 관심’ 차원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100통 넘는 이메일을 받았다
양향자가 누구인가?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1985년, 18세의 나이에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 입사한 뒤 삼성그룹 최초의 여상 출신으로 임원에 오른 인물이다. 2016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인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당시 민주당의 기대주였다. 삶의 서사도 눈길을 끌었고 삼성전자 출신이 민주당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광주의 딸’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까지 붙었다.
그런 그가 승승장구하며 민주당 최고위원에 오른 2017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삼성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농성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유가족도 아니다. 반올림 같은 전문 시위꾼들이 시위를 하는 건 용서가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반올림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500일 넘게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문제가 커지자 양향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나도 바닥 노동자부터 시작한 사람으로 유가족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인정한다. 이재용 부회장도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보상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면서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귀족노조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씨불였다.
이 발언에 너무 빡쳐서 “‘반올림 용서 안 된다’고? 양향자 당신이야말로 용서가 안 된다”라는 기자수첩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진짜 내 기자 인생 최초로 100통이 넘는 이메일과 그에 버금가는 숫자의 SNS 메신저를 통해 폭탄 같은 욕설을 먹었다. 대가리를 깨야 된다는 둥, 주둥이를 불로 조져야 된다는 둥, 진짜 창의적인 욕들을 마구 먹은 기억이 있다.
내상이 없었느냐? 당연히 엄청난 내상을 입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 욕설 대부분이 내가 평소 벗이라고 믿었던 정치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쏟아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표(기사가 나갈 때에는 대선 후보였음)가 공들여 뽑은 사람을 네까짓 게 뭔데 욕하고 다니냐?”는 내용이 주류였다. 빨갱이니, 사회주의자니 하는 말들을 벗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욕설로 들으니 힘이 들긴 했다.
그래도 한 번 그렇게 시원하게 욕을 먹고 났더니 내성이 생겼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해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아무튼 양향자 덕분에 기억에 남는 인생 경험을 해본 셈이다.
공감 능력이 빵점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해명을 하나 하자면 나는 양향자가 재벌 임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양향자를 비판한 기사에서도 그런 점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나는 친노동자적인 사람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2020년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공정거래 3법을 두고 양향자와 박홍배 당시 최고위원이 두 차례나 공개적으로 충돌한 일이 있었다. 박홍배 최고위원(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금융노조위원장 출신이다.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가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정의철 기자
그런 충돌이 있으면 나는 당연히 박홍배 의원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향자가 친기업적 주장을 공당에서 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하지 않는다. 다양한 존재들이 어울려 토론하고 민심을 얻으려 하는 과정이 정당이다.
문제는 당시 반올림에 관한 양향자 주장이 너무 얼척이 없었다는 점이다.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귀족노조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게 양향자 주장이었는데, 이 멍청한 인간은 진짜로 반올림이 노조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반올림은 노조가 아니라 시민단체였다.
그리고 양향자가 “반올림 농성 하는 사람들은 유가족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고 황유미 노동자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유가족이 아니면 누가 유가족이냐?
귀족 어쩌고 한 건 진짜 웃긴 이야기다. 나도 2016년 그 농성장에서 ‘반올림 이어 말하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귀족 어쩌고 할 수가 없다. 텐트도 못 치게 해서 길바닥에 비닐로 얼기설기 바람만 막아놓은 공간에서 반올림은 500일 넘게 농성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개눈깔로 봐야 그게 귀족으로 보이냐?
내가 제일 화가 났던 대목은 “나도 유가족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인정한다. 이재용 부회장도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보상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는 양향자의 발언이었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가 7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양향자 대가리에는 ‘돈으로 보상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 들어 있는 거다.
그런 말을 씨불이기 전에 노동자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정치의 기본 아닌가? 보상 운운하기 전에 “이건희나 이재용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게 먼저다”라고 발언하는 게 순서 아니냐고? 도대체 이런 공감 능력을 가진 자가 무슨 정치를 한단 말인가?
13일 양향자가 발표한 대선 경선 출마 선언문을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더라. 그가 내세운 본인의 강점이 과학기술 전문성과 호남 출신 정치인으로서의 외연 확장성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보수 고정 지지층은 물론 호남표, 기업표, 청년표, 여성표, 과학기술인표까지 가장 폭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후보”라고 주장했단다.
이 정도면 지금 지지율이 한 70%는 나오고 하는 말이겠지? 진짜 웃기고 자빠진 거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다 광주의 딸이 아니다. 민중의 죽음에 그따위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이 무슨 염치로 광주를 들먹이나?
네 장점이 외연 확장성이라고? 호남표에 대한 확장성을 지녔다고? 네가 뭘 하건 호남에서 단 1%의 지지도 못 받는다에 내 호주머니에 있는 500원과 네가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서 번 돈 15억 원을 모조리 걸겠다. 나랑 내기 한 판 할래? 쫄리면 뒈지시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