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아련한 그리움의 노래들, 정민혁 [도서대여점]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어법으로 말하는 음악가

정민혁 '도서대여점' ⓒ정민혁

들을 음악이 없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헛웃음만 나온다. 국내에서 날마다 새로운 곡이 평균 5,000곡쯤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는 100,000곡쯤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쉽게 단언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누군가는 그 영역에서 피땀눈물 흘리며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밴드 라쿠나에서 활동하는 정민혁의 첫 음반 [도서대여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은 오지랖일까 아닐까.

다섯 곡의 모던 록 음악을 담은 음반은 아련하고 아찔하다. 그리움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노래하는 정서가 아련하고, 노래하는 정민혁의 목소리 또한 아찔하기 때문이다. 그 아련하고 아찔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도록 곡을 써냈고, 효과적으로 편곡해 연출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음반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도서대여점’의 리프에서 느껴지는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공기 가득한 정민혁의 보컬을 타고 둥실둥실 떠오른다. 하지만 곡을 뒷받침하는 일렉트릭 기타의 존재감은 이 곡의 장르가 록임을 분명히 할 뿐 아니라 신시사이저 연주와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앙상블을 풍성하게 완성한다. 곡의 후반부까지 힘을 유지하면서 몸집을 키우는 주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꿈꾸는 듯한 사운드는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상상과 그리움을 표현한 곡답게 공간감 넘치는 사운드 메이킹을 연출하고 확연한 흐름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펼치는 곡에 흐르는 멜로디는 매끈하다. 특히 마냥 거칠기보다 센티멘탈하게 느껴지는 록 사운드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거리감과 지반을 흔드는 소리의 규모로 마음을 흔든다. 섬세하지만 강렬하고, 강렬하지만 요란하지 않은 록 사운드는 ‘날씨는 흐림’을 비롯한 다른 곡들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명징하기보다 흐릿한 소리의 향연은 젖어버린 마음을 표현하는데 제 격이다. 누구도 하루의 대부분을 이런 상태로만 살아가진 않지만 이렇게 축축해진 마음의 시간을 만나지 못한 일상은 사막처럼 버석거릴 게 분명하다. “그리움은 오지 않게 막아 두자”(<도서대여점>라고 노래하더라도, 그리움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정민혁의 노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강렬하게 우리를 엄습하는지, 제각각 다른 경험과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기억과 감각을 뒤흔들어 복기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순간이 때때로 고통스럽더라도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믿게 해버리는 최면의 음악이다. 예술은 자주 사기를 치지만 번번이 무죄인 이유다.

정민혁 Jung MinHyuk '도서대여점 (Borrowed Hearts)' MV

예술은 일하지 않는 순간, 명료하지 않은 시간을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다. 사회 속의 존재,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인 개인을 드러내고 지키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고, 동시에 한 사람의 내밀한 마음을 표출할 때에도 효과적이다. 사실은 자신에게만 중요한 감정이고 이야기일지라도 그 감정을 가치 있게 표현하고 아우르지 못하면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한다.

이 음반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수록곡 다섯 곡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은 음반의 만듦새에 대해서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어법으로 말하는 음악가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요즘 음악이 어떻다고 이야기 하기 전에 괄목상대하는 태도로 날마다 새로운 음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세상은 항상 나보다 크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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