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국힘 여덟 후보의 ‘반명’ 전략

주말 이틀에 걸쳐 이른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8명의 TV토론을 다 시청했다. 진짜 보기 싫었는데 명색이 칼럼을 쓰는 사람이니 꾹 참고 봤다.

언론에서는 일요일(20일) 벌어진 나경원, 이철우, 한동훈, 홍준표 후보의 두 번째 토론을 ‘죽음의 조’라고 하던데 그 대목부터 진짜 피식 웃었다. 모름지기 죽음의 조라고 하려면 2002년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가 한 곳에 모인 F조 정도 돼야 하는 것 아니냐?

그 월드컵에서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와 함께 C조에 포함된 중국의 언론이 “죽음의 조에 포함됐다”고 징징거렸는데 그건 중국 니네 입장이지! 브라질이나 터키, 코스타리카는 그 조가 개꿀조였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무튼 죽음의 조 같지도 않은 수준 낮은 토론 잘 봤다. 일요일 토론은 토요일(19일) 토론과 판박이였다. 8명의 후보가 한목소리로 “내가 나서야 이재명을 이길 수 있다”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게 무슨 토론인가 싶기도 했다.

이런 마케팅 전략의 본질

내가 이들 8명을 모두 싫어해서 이런 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 모름지기 제2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엄청난 행사다. 그러면 후보들은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 때도 후보들이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후보 8명이 전부 민주당 이재명 후보 이야기만 한다. 이재명을 반대하는 게 이 나라의 미래냐? 세계 석학들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개척할 건가요?”라고 물으면 “이재명에 반대하면 미래가 개척됩니다”라고 답할 거냐고?

반(反) 이재명 이외에도 이야기한 게 있긴 하다고? 그렇긴 하더라. 키높이 구두, 가발, 보정속옷 이야기도 하던데? 그게 공당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 나올 이야기냐? 개그도 이런 개그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들이 왜 이런 한심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마케팅을 할 때 만년 2등들의 고민이 있다. 1등을 도저히 따라잡을 가능성이 안 보이고, 그렇다고 사업을 접을 수는 없고. 이럴 때 하는 것이 2등 마케팅이다.

2등 마케팅 안에도 여러 전략이 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2등 마케팅이란 1등을 역전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다. 이 전략의 두 줄기는 첫째, 2등이 아닌데 2등이라도 하려고 하거나 둘째, 2등은 맞는데 도저히 1등을 이길 수 없으니 2등이라도 지키려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1990년대 중반 대우자동차가 독특한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광고 제목은 ‘대한민국에 대우자동차가 없어도 되겠습니까?’였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현대자동차 승승장구하십시오.”라며 경쟁사의 선전을 기원했다.

이 광고는 우리나라에서 ‘2등으로라도 먹고 살아야겠다’는 전략을 가장 잘 구현한 마케팅 전략으로 평가를 받는다. 당시 만년 2등 대우자동차가 현대차를 꺾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었다. “우리 제품이 현대차보다 좋아요” 따위의 마케팅은 씨알도 안 먹혔다.

이철우(왼쪽부터), 나경원, 홍준표, 한동훈 제21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20일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1차 경선 B조 토론회'에서 토론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04.20 ⓒ국회사진기자단

그래서 대우차는 2등이라는 사실을 인정해 버렸다. 대신 대우차는 “1등은 현대차지만 2등으로 현대차를 견제하는 대우차가 없다면 현대차가 어떻게 긴장을 하고 좋은 차를 만들겠나?”라는 전략을 들고나왔다. 이런 점을 감성적으로 호소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대우차 서포터가 되어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이 점에 비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의 마케팅 전략을 보면 진실이 얼추 보인다. 저들은 대선에서 이기려는 게 아니다. 2등이 되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반(反) 이재명이 아니라 자기만의 미래를 외쳐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유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국민의힘 후보가 돼 대선에서 2등을 차지하려 한다. 그래야 내년 있을 지방선거에서 권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2등도 아닌 것들이

앞에서 말한 대우자동차의 2등 마케팅 전략에는 사실 함정이 하나 있다. 1990년대 현대차가 1등인 것은 분명했지만 대우차가 2등인 것은 분명하지 않았다. 당시 대우차는 기아차와 치열한 2등 다툼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대우차가 1위인 현대차를 겨냥해 “1등 힘내십시오. 2등인 우리 대우차와 좋은 경쟁해 봅시다”라고 선언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 인식 속에 ‘우리나라 1등은 현대차고 2등은 대우차구나’라는 이미지가 생긴다. 2등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1등과 각을 세우며 자기를 2등으로 치켜세우는 전략이다.

실제 이런 전략으로 업계의 판도를 바꾼 전설의 기업이 있었다. 미국 자동차 렌터카 업체 에이비스(AVIS)였다. 1960년대 에이비스가 내세운 광고문구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렌터카 업계에서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

얼마나 당당한 2등 선언인가? 2등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솔직함, 그리고 “우리는 2등이어서 고객님을 더 열심히 모실게요”라는 진정성이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마케팅에는 반전이 있다.

당시 업계에서 1위 기업은 무려 시장점유율 70%를 자랑하는 허츠(Hertz)였다. 나머지 30%를 두고 고만고만한 수십 개의 회사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에이비스도 이들 중 하나로 시장점유율은 고작 2~3% 정도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에이비스는 당시 2위 기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에이비스는 자신들이 당당히 2등이라고 선언했다. 2등인지도 확실치 않은 주제에 “우리가 2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자기와 경쟁하던 업체들과의 도토리 키재기 논쟁을 끝내버린 것이다.

국힘 8후보의 전략이 이런 것이다. 지금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너무나 확실한 1등이다. 그런데 2등이 누군가? 도토리들이 열심히 깝을 치며 키재기를 하는 국면이다. 이러니 너도나도 “내가 반(反) 이재명의 선두주자”라고 외치는 거다.

이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들은 지금 대통령이 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진짜 대권을 원한다면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들 중 누구도 비전에 관심이 없다. 이들의 관심은 당권,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 때 휘두를 권력이다.

아무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토론 잘 봤다. 죽음의 조와 죽음의 조가 아닌 조에서 두 명씩 뽑아 또 토론을 할 모양이던데 다음부터는 쳐다볼 필요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예선 때 한 이야기를 반복할 텐데 뭐하러 시간 들여 그걸 보겠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대선 후보라? 놀고들 자빠졌다 싶은데 그게 또 그들의 직업이니 어쩌겠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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