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022년 3월 7일,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하남 앞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03.07.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시도는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 막았지만, 느닷없는 계엄 못지않게 충격적인 재정 운용 실패와 그 결과로 나타난 경제 파탄은 위헌·위법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용인된 측면이 있다.
무너진 경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경제성장률이다. 출범 첫해인 2022년 2.7%에서 이듬해 1.4%로 떨어졌다. 2024년엔 2%에 머물렀고, 올해 다시 1.5%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저성장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을 거쳤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저성장은 대외적인 위기 요인으로 설명이 안 된다.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운용이 얼마나 형편없을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많은 시그널이 있었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RE100이 뭐냐 되물으며 웃어넘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뇌리 남은 장면이 더 있다. 문제의 토론회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유세 현장에서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이 “정부가 그저 멍청한 짓 안 하고 정직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날 그는 가죽 장갑을 끼고 남색 재킷에 회색 목티를 받쳐입었다. 조직폭력배가 떠올랐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결정은 ‘무대뽀’였다.
윤석열 정부 3년간 주요 경제 통계를 정리해 보니, 신기록이 최소 7개다.
첫 번째로, 무역적자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22년 무역적자가 478억 달러에 달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기록은 잔뜩 움츠러든 내수 상황을 보여준다. 소매판매액지수 증가율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하락했다. 해당 지수가 2년 연속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영업 붕괴도 심화됐다. 2023년 폐업자는 98만 6천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수치를 훌쩍 넘었다.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정 확대가 꾸준히 요구됐다. 경기가 안 좋을 땐 재정을 풀어 소비를 진작하는 게 재정 운용의 기본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기본적인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했다.
예산을 쥐어짰다. 네 번째 신기록이 역대 최저치의 예산 증가율이다. 2024년 예산 증가율은 2.8%, 올해는 2.5%다. 2024년의 2.8%가 역대 최저치였는데, 올해 다시 경신했다.
2%대 예산 증가율을 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이른바 의무지출이 예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정부가 정책적 의도를 갖고 예산 배정을 하는 재량 지출도 크게 줄이기 어렵다. 물가 상승률도 반영해야 하고, 기존 예산을 깎으면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신기록이 여기서 나온다. 2023년 재량지출을 전년 대비 14.7% 삭감했다. 최근 10년 내 볼 수 없던 수치다. 특히 R&D 예산 삭감은 단순 정책 결정을 넘어 사태로 기록됐다.
편성한 예산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여섯 번째 신기록이 불용 규모다. 2023년 45조 7천억원의 불용을 냈다. 역대 최대치다. 2024년 불용 규모는 20조 1천억원이다. 역대 두 번째다. 지방정부에 내려야 하는 지방교부세를 국회 동의 없이 멋대로 깎았다.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예산 심의권과 지자체의 자치재정권을 대놓고 무시한 위헌적 처사였다.
윤 전 대통령은 짠물 예산을 고집한 이유로 재정건전성을 댔다. 지출을 최소화해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2024년 관리재정수지가 104조 8천억원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세 번째 규모다. 앞서 두 차례의 대규모 재정 적자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확대한 2020년과 2022년에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가 긴축재정을 폈음에도 적자가 불어난 이유는 감세에 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늘렸다. 감세 여파로 정부 세수가 급감했다. 2023년 국세 수입이 전년 대비 13.1% 줄었다. 2024년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2.2%가 줄었다. 10%대 국세 수입 감소율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년 연속 국세 수입 감소도 유례가 없다. 일곱 번째 신기록이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예산 지출을 조인다면서 감세로 수입을 줄였고, 결국 적자가 늘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의 재정 운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멍청한 짓’이다.
경제 파탄의 원인이 재정 운용 실패 하나뿐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중국의 기술 추격 등 대외적인 여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재정 운용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 수단이라는 점이다. 정부 역할이 빛나야 할 부문에서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놔버린 것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 내수 활성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실탄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 운용을 정상화해야 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증세가 화두다. 김경수·김동연 후보는 재정 확대를 위한 증세 필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증세보다 재정 지출 조정에 무게를 싣는다. 재정 지출 조정을 통해 경제 마중물을 위한 충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진 2022년과 2023년 세제 개편,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확대로 2028년까지 총 89조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중 법인세 감소분이 47조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법인세 감면액 상당수는 대기업에 집중된다. 감세의 투자 효과도 불투명하다. 강병구·성효용·정세은 교수가 낸 ‘법인세의 분배효과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법인세 인하의 투자 효과는 미약하고, 오히려 가구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 정부가 효과를 알 수 없는 법인세 감세를 유지하면서 수십조원의 세수 감소를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후보는 증세를 하면 민간 부담이 커진다고 하는데, 최소한 법인세 정상화에 대해서는 다른 후보들과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