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영화리뷰]소소한 다정함은 아이의 우주를 변화시킨다, 영화 ‘말없는 소녀’

국내 서점가 휩쓴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 소설이 원작…지난 4일 개봉

영화 '말없는 소녀' ⓒ영화 '말없는 소녀' 스틸컷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두 가지 소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였다. 두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소한 다정함이 악몽 같은 현실에 빠진 인물들을 구해낸다는 점이었다. 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소재와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행동이 타인의 비극적인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흐름은 일맥상통했다.

국내 '클레어 키건' 신드롬에 힘입어 영화 '말없는 소녀'에 관한 재개봉 요청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말없는 소녀'에서 주인공 코오트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 소녀다. 게다가 집은 너무 가난하다. 코오트의 엄마는 막둥이를 임신 중이라 딸들을 살뜰히 돌볼 여력이 없다. 아빠마저 코오트의 자매들을 돌볼 만한 다정함이 부재하다. 아빠는 술과 도박을 즐기고 겉돈다. 자매들 중 제일 문제아로 낙인 찍힌 코오트는 방학 기간 동안 먼 친척 부부의 집에 맡겨지게 된다.

친척 부부의 이름은 아일린과 숀이다. 두 부부는 코오트를 반갑게 환영하며 받아들인다. 한 번도 빗어 본적 없던 것 같은 코오트의 긴 머리를 매일매일 손수 빗겨주고, 따뜻한 물에 찌든 때도 정성스럽게 닦아준다. 아일린은 코오트에게 집의 규칙과 철학도 알려준다. 코오트는 서먹했던 숀과 가까워지고 노동의 기쁨도 알게 된다. 또 코오트는 평소 글읽기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숀과 책도 함께 읽으며 글 공부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아일랜드의 목가적인 풍경 아래에서 펼쳐지는 두 부부의 따뜻한 환대를 그림처럼 담아낸다. 평범한 다정함이 스크린에선 찬란하게 빛나고 숭고하게 펼쳐진다.

또한, 영화는 다정함을 머금은 어린 아이의 얼굴 풍경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사랑, 관심, 애정을 흡수한 아이는 서서히 불안의 그늘을 거둬낸다. 아이는 스스로 목욕도 하고, 숀 옆에서 곤히 잠들기도 한다. 이웃들은 코오트에게 롱다리 소녀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지어 주기도 한다. 시내로 놀러간 코오트는 예쁜 옷들을 입어보곤 수줍게 웃기도 한다. 작은 다정함들이 쌓여 아이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아이는 아이 답게 빛난다. 그러던 중 코오트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편지를 받게 되고 외려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하냐"며 슬퍼한다.

처음엔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찬란한 환대를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중후반으로 흐를 수록 친척 부부의 숨겨진 이야기와 슬픔도 가슴을 때린다. 부부는 자신들을 슬픔을 코오트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부부의 집에선 비밀을 없기 때문이다. 앞서 아일린은 코오트에게 "집에 비밀이 있다는 건 부끄러운 게 있다는 건데 우린 부끄러운 일 원치 않거든"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자신의 집에선 비밀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척 부부도 본의 아니게 비밀을 만들고 만다. 샘터로 갔다가 큰 일이 날 뻔한 코오트의 일에 대해 부부는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 비밀로 묻어버린다. 영화는 친척 부부가 가진 오랜 슬픔과 코오트를 향한 사랑을 배우들의 연기로 복잡미묘하게 담아낸다. 아픔과 사랑을 동시에 품은 부모의 마음을 스크린은 잘 표현해 냈다. 코오트에게 벌어질 뻔한 일은 친척 부부에게 큰 충격이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일린과 숀이 그 일을 비밀로 만드는 모습을 통해서 부부의 아픔은 결코 치유되지 않으며, 코오트를 자신들의 자식처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충만한 사랑이 빚어내는 빛나는 다정함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영화는 시들고 눅눅해진 마음들에 활기를 꽃피운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모두의 마음에 찬란한 빛을 심어주는 영화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지난 2023년 5월에 개봉했고, 올해 6월 4일 재개봉했다. 클레어 키건의 중편 소설인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 '말없는 소녀' ⓒ 영화 '말없는 소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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