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지옥 4편

직장 괴롭힘을 법제화 한 프랑스를 가다

프랑스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노동법으로 방지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프랑스라고 처음부터 잘 했을까. 프랑스에서도 시행 착오는 있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한국에서 이를 미리 살펴 볼 수 있다면, 좀 더 분명한 법 제정과 제도 정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민중의소리'가 프랑스에 집중한 이유다.

올해 6월 프랑스에서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프랑스 최대 통신사 오랑주(Orange)의 전 최고경영자(CEO)와 전직 간부들이 무더기로 형사재판에 회부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재판을 받게 된 이유는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괴롭힘을 조장하거나 방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대상 직원들의 직무를 수시로 바꾸고 모욕감을 주고 따돌림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직장에서 발생한 정신적 괴롭힘 때문에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생소하다. 게다가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에게 물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소식이었다.

우리는 이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의 노동법을 연구하고 프랑스로 찾아가 노동조합과 피해자를 만났다. ‘직장 내 괴롭힘’을 대하는 프랑스의 사회와 법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Chapter1. 사용자가 노동자의 ‘정신적 건강’도 책임져야 하는 프랑스의 노동법

오랑주에서 발생한 일은 이렇다. 2008년부터 2010년사이에 직원 19명이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명이 자살기도를 했고 8명이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다 직장을 떠났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데도 경영진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며 프랑스 사회가 분노로 들끓었다.

사법당국은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까지 기소 했다. 그들을 사법처리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법전 L.1152-1 :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 신체적·정신적 건강, 직업적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을 겪어선 안 된다.
프랑스 노동법전 L.1152-4 :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의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매우 중시하며, 이를 사용자의 책임으로 노동법에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직장 내 정신적 괴롭힘을 예방해야 할 책임까지 사용자에게 묻고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다. 관련법은 물론이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 괴롭힘이 발생해도, 피해자나 가해자를 별종으로 취급해버리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결국,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Chapter 2. 프랑스 회사들은 특별하다? 프랑스의 법이 특별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프랑스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법이 제정되는데 한국 기업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로렌지방에 있던 대우 공장에서 출산휴가나 병가를 사용한 노동자를 종일 독실에 가두거나, 이들에게 마땅한 일을 주지 않고 담배꽁초 줍기 등의 굴욕적인 일까지 시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쟁의가 발생했고, 괴롭힘 관련 법안이 제출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프랑스 기업들은 원래부터 이런 문제에 민감했을까?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다양한 루트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경로가 마련됐고 노동조합이 현장을 감시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들은 ‘적어도’ 프랑스 안에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프랑스를 벗어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에선 그래도 돼.”

유명 웹툰 ‘송곳’의 명대사 중 하나다. 프랑스계 유통회사를 배경으로 노동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그린 이 웹툰에서 처럼, 프랑스계 회사라고 한국에서 프랑스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현지의 상황을 이용해 편하게 장사를 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앞서 ‘민중의소리’가 소개한 프랑스계 회사인 ‘에어리퀴드 코리아’가 한 예다. ([직장지옥①]화장실 간 횟수까지 묻는 상사..나는 두 번 쓰러졌다)

법과 제도, 감시와 제보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문제는 언제든, 어디서든 발생한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는 모범 기업으로 꼽히는 프랑스 회사가 한국에서는 다른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Chapter 3. 프랑스에서 만난 노동조합

프랑스의 노동법이 궁금했다. 정신적 괴롭힘을 처벌하는 법이 있다면 사례들도 많았을 터. 프랑스에 가보기로 했다. 직접 듣고 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프랑스라고 처음부터 잘 했을까.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한국에서 이를 미리 살펴 볼 수 있다면, 좀 더 분명한 법제정과 제도 정비가 가능하지 않을까.

12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Aéroport Paris-Charles de Gaulle)에 도착했다. 지은 지 200년이 넘은 건물들이 중후한 멋을 뽐내고, 거리를 걷기만 해도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빠져드는 도시 파리. 기대감을 안고 여정을 시작했다.

프랑스 대표 노동조합인 노동총동맹(CGT)를 찾았다. 프랑스 시간으로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부를 방문했다.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이 취재진을 맞았다.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와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은 현지 노동문제에 경험이 있고 10여 년째 파리서 거주 중인 한국인에게 부탁했다. 그들이 말하는 프랑스 노동환경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노동총동맹(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은 프랑스 내 대표 노동조합 중 하나로 줄여서 CGT라고 불린다. 30여개 산별노조의 연맹인 CGT는 조합원 수가 70만 명에 이르며, 가장 많은 사업장 노조대표자를 보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사는 파리 동부 몽트뢰유(Montreuil)에 위치해 있다. 본사 건물엔 수천 명이 상시 근무할 수 있는 공간과 각종 복지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CGT 관계자에 따르면, 30여개로 나뉘어져 있던 산별노조 본부를 한 곳으로 모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괴롭힘의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낳는 (기업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살펴야 해요. 가해자 한 사람이 처벌을 받고 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토니가 강조한 말이다. 토니는 특히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비춰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개인의 문제로 비춰지면, 구조적인 문제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면, 어떤 누가 와도 정신적 괴롭힘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달성할 목표를 제시하는데 그 목표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면, 직장 상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밑에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 밖에 없죠.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괴롭힘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프랑스 노동조합이 처음부터 이런 입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괴롭힘의 문제에 경험이 쌓이지 않았던 시절엔 CGT도 가해자 개인을 처벌하는 법적대응에 급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보니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도 사람만 바뀐 채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구조적문제를 살펴야하는 또 다른 이유로, 세르주는 ‘동료끼리의 괴롭힘’을 들었다. 내부 실적경쟁 등 다양한 문제로 동료끼리도 괴롭힘이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노조도 개입하기가 난감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같은 약자의 입장에 놓여있는 노동자끼리의 괴롭힘이기에 어느 누구의 편을 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토니는 “회사가 노동자들 서로를 반목시키는 경우”라며 “그렇기에 노조 입장에선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봐야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Chapter 4. 프랑스에서 피해자는 혼자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은 2002년경에 시행됐다. 처음 제정된 법이 그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여러 번 바뀌었다. 주로 바뀐 내용이 ‘괴롭힘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는 부분’이라고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말했다.

세르주는 “기존에는 괴롭힘에 대한 피해자 증언만으로도 피해사실이 어느 정도 입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진과 이메일 등의 증거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입증책임이 피해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도 자신의 결정이 괴롭힘과 무관하다면 반드시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프랑스 대부분의 기업에선 모든 지시와 피드백이 메일을 통해 이루어지고, 경고할 경우엔 반드시 서면으로 배송하게 돼 있다. 이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항상 입증할만한 근거가 이메일이나 서면 형태로 남기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괴롭힘의 피해자는 대부분 힘이 없는 개인이자 약자다. 때문에 대응 자체가 어렵다. 이는 한국도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다른점은 노동조합 문화다.

프랑스에선 노조가 노동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CGT 또한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피해자가 노조 조합원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뱅은 “CGT는 연대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가 찾아와도 함께 문제해결에 나선다. 언제나, 노동자라면 노조에 가입을 했든, 안 했든”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인사과와 직장 내 협의체에 신고해 문제해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 보통은 협의체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을 땐 노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세르주는 입증책임의 강화로 산업의(Médecine du travail. ‘노동의’라고도 해석한다)의 역할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프랑스 회사에는 일종의 직장 내 협의체인 ‘위생안전근로조건위원회’(CHSCT)를 두고 있는데, 이곳과 연계된 의사가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검진한다.

노동자에게 건강상 문제가 발견되면, 산업의는 회사에 적정한 배치전환 등 개별적인 조치를 제안할 수 있다. 또 관련 정보를 노조로 알리는 경우도 있다. 산업의의 진단을 통한 피해사실 입증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통로가 노동자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Chapter 5. 착한 기업을 기대하기보다, 강한 노동자의 힘을 기대하자

국내의 프랑스계 기업에서 발생한 ‘직장 내 정신적 괴롭힘’ 사건에 대해서도 물을 기회가 있었다. 화장실을 몇 번 갔다 왔는지를 수시로 보고토록 하고, 면전이나 전화통화로 끊임없는 압박을 가하다가 결국 노동자가 정신건강 문제로 쓰러지는 사건이 프랑스계 회사에서 발생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일단 현지에서 계약을 했으면, 현지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르주와 토니, 실뱅은 다음과 같이 입을 모았다.

“프랑스기업들이 딱히 도덕적으로 우월한 게 아닙니다. 이곳 공기업들도 해외에 나가서는 현지 상황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합니다. 한국의 법에서 미흡한 부분을 이용하는 것이죠.”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기고 난 뒤에야 끝났다. 실뱅의 안내를 받으며 CGT를 둘러본 취재진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했다. 통역사 덕분에, 프랑스 도착 후 처음으로 먹는 밥다운 밥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 중 누구도 종업원에게 다그치지 않았다. 파리의 식당은 그랬다. 취재진은 2시간 동안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처럼 다급하게 종업원을 불렀다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분위기다.

파리에서 10여년을 살아왔고, 수년 동안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프랑스를 방문한 한국 기업인들을 여러 번 만나봤다는 통역사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기업인들의 마인드는 한국의 기업인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보통 한국의 기업인들은 직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쟤들을 먹여 살려’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여기선 ‘쟤들이 일을 해서 나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기업인들의 마인드가 더 우월하다는 말일까. 아니다. 통역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프랑스 기업인들은 강력한 노동법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의 마인드는 이런 두려움의 결과다.

프랑스 노조 조직률은 8%다. 한국보다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이 노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한번 파업에 나설 때 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동료 직원들, 다른 직종의 시민들까지 나와서 함께 연대하기 때문이라고 통역사는 설명했다.

프랑스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과 제도는 그저 노동현장의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시민들이 함께 관심을 갖고 노력해 온 결과였다.

Chapter 6. 직장 내 괴롭힘에서 벗어난 레베카

프랑스에서 우리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레베카 먼에르(Rebecca Munier, 32·여)씨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다가 가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공론화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이제 괴롭힘을 당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고 가면, 노동자대표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에요. 제가 겪었던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소르본 대학 피에르 에 마리 퀴리 캠퍼스’(Université de Sorbonne Campus Pierre Marie Curie, 이하 소르본 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꽃과 신비로운 식물들이 가득한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을 가로질러 소르본 대학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 앞 벤치에 앉아 30분가량 기다렸을까, 레베카씨가 미소 띤 얼굴로 “Bonjour(봉쥬르)”라고 인사하며 취재진을 반겼다.

우리는 함께 학교 앞 식당에서 장난끼 가득한 이탈리아 주방장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수많은 꿀벌이 ‘윙윙’ 날아다니는 학내 카페 테라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레베카는 2016년 10월 교육공무원으로 공립대학인 소르본 대학 전산실로 배정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첫 출근과 함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공간 곳곳에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전산팀 직원들은 레베카를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다. 레베카가 들어왔으니, 최소한의 배려에서라도 그림을 지웠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껄끄러운 존재로 취급했다.

“부서 사람들은 여성인 제가 이곳에 온 것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였어요. 직접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제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이죠.”

출퇴근길에 인사도 안 하며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함께 절대 밥을 먹지 않는다던가, 휴식시간에도 그를 무시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휴가를 가면서 업무를 대신 봐야할 레베카에게 인수인계도 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레베카는 전산팀 상사에게 문제점을 말했다. 상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네가 더 노력해봐”라고 말할 뿐이었다. 레베카는 학교 인사과에도 문제점을 보고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공무원사회의 특징이었다. 레베카는 “사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 인사과가 곧바로 움직인다”며 “하지만 프랑스 공공기관에서는 보고를 받아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공무원은 보통 1년가량 수습생활을 하는데, 이 기간을 마치면 정식발령을 받는다. 수습기간을 마친 지난해 6월, 레베카는 인사과 직원과 면담을 하면서 황당한 상황을 인지하게 됐다. 자신의 상사와 인사팀이 처음엔 레베카의 수습기간을 연장시키려 했고, 레베카가 노조를 만나는 걸 알자 ‘해고’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뒤로, 레베카는 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Chapter 7. 레베카가 싸울 수 있었던 이유

레베카는 혼자가 아니었다. 레베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노동총동맹’(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줄어서 CGT)이 있었다.

사건을 알리기도 전에 CGT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레베카는 그 길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는 “수습기간 보고서가 나오면, 그걸 노조 관계자들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CGT 관계자가 관련 내용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CGT는 레베카와 함께 ‘정신적 괴롭힘’ 문제를 대학 구성원들에게 알렸다. 2페이지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전단지에는 업무 공간 곳곳에 그려진 외설적인 그림을 실었고, 그에게 가해진 ‘정신적 괴롭힘’을 나열했다. 또한 관련 법령도 명시했다.

대학 구성원들이 레베카의 피해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공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육당국도 뒤늦게 문제해결에 나섰다. 레베카가 근무하던 공간의 외설적 그림을 모두 지우도록 조치를 취했고, 대학 내 모든 업무 공간에 문제가 될 만한 그림은 없는지 조사를 진행했다.

레베카는 교육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콩쿠르를 통해 다른 대학에서 9월부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노조의 지원을 받으며 행정소송도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보통 노동문제는 노동법원에서 소송이 전개되지만, 공무원의 경우엔 행정법원에서 잘잘못을 가린다.

노동자의 ‘정신적 건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있다고, 모든 게 쉽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법이 계속 수정된다. 관련법에서 가장 많이 수정된 부분이 ‘피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정신적 피해를 입은 노동자라도,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다행히 레베카의 경우엔 대놓고 업무공간에 그려져 있던 ‘외설적인 그림’ 등이 증거자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레베카는 “증빙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꼼꼼히 되새겨 보아야하는 문제가 항상 남아있는 셈이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꿋꿋하게 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사실에 대한 공론화 이후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레베카는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며 “힘이 되어준 직장 동료들과 학내 구성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Chapter 9. 한국에선 안 되고 프랑스에선 되는 이유

레베카 사례로 봤을 때, 프랑스와 한국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레베카의 사례로만 봤을 때, ‘차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사실상 프랑스 공무원 사회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조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해고’를 검토했다는 내용을 봤을 때, 노조에 대한 반감도 한국사회처럼 프랑스 사회에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레베카가 노조의 도움을 받아 떳떳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괴롭힘’을 방지하는 프랑스 법제도와 강력한 노조가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레베카가 CGT와 함께 자신이 받은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에선 공무원도 자유롭게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CGT가 합법적인 노조로서 레베카의 일에 관심을 갖고 교육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노조설립 신고증을 발부받긴 했으나, 사실상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겠다’는 굴욕적인 합의를 전제로 해야 했다. 비슷한 문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금까지 노조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노조법에 따르면, 해고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교사·공무원 노조법을 따로 규정해,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사실상 ‘말 잘 듣는 노조를 할 게 아니라면, 노조를 하지 말라’는 법이다.

후진적인 법체계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