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일까?
직장 내 괴롭힘 13문 13답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3항
헌법 중 유일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문구는 노동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한 32조에서 등장한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기계처럼 일만하게 만드는 노동 조건이 큰 문제로 대두됐다면, 현재에서는 직장 내에서 인격을 훼손하는 ‘직장 내 괴롭힘’도 노동자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큰 문제로 나서고 있다.
“월금은 ‘욕값’”이라는 말도 있지만 헌법에서 말하듯이 임금을 대가로 받는 직장이라도 한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할 권리는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명령이나 성희롱 등 누가 봐도 부당한 행위는 물론, 업무와 관련된 명령이지만 특정인에게만 불리하고 부당한 지시를 내려 괴롭힘이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투명인간 취급하는 등 말하기도 치사한 행위로도 나타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다양해지고 있어 몇 가지 유형으로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련법조차 마련되지 않아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법적 정의마저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무엇일까? 내가 직장에서 당하고 있는 행위들은 ‘직장 내 괴롭힘’일까?
이 같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궁금증을 오랜 시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다뤄온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와 김동현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를 만나 Q&A 형식으로 풀어봤다.

- 직장 내 괴롭힘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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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직장 내에서 사용자 또는 동료로부터 인격적 또는 법익을 침해하는 일체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법적 정의가 없어 현재로서는 사회적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의미로는 타인으로부터 업무와 관련해서 직무에서 유발되는 인간관계 문제 또는 직무관계 문제에서 유발되는 고의적인 민사적 불법행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동현 변호사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칭하는 행태는 다양하다. 그래서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정의하기 쉽지 않은데, 다른 나라 예들을 보면 동료, 상급자가 일터에서 인간의 존엄, 인격권을 침해하는 조치들, 그로 인해서 피해가 발생하는 행위들을 말한다.
- 어떤 행동들이 직장 내 괴롭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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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딱히 유형화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지만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 사용자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직장 내 괴롭힘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행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해서 구조조정이라든가 배치전환, 감축을 위한 방안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다른 유형으로는 동료 간에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다만 특징이 있다면 이 문제는 결국 회사 전체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직급과 위계, 회사 자체에서 괴롭힘 문제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 꼭 신체나 재산의 손해가 있어야만 직장 내 괴롭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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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아니다. 최근 신체나 재산의 손해를 가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상당부분 많이 줄었다. 이런 종류의 괴롭힘은 불법행위라는 것을 뚜렷하게 알기 때문에 줄어드는 추세다.
다만 최근에는 직접적 신체적, 재산적 손해보다는 정신적 괴롭힘에 치중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책상을 창고로 옮긴다거나, 사무직인 직원을 데려다가 환경미화라면서 하루종일 풀을 뽑게 한다든가, 아니면 쓸 데 없이 회사 앞마당에 삽으로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에 메우게 하는 식이다.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법원도 분명 불법 행위로 보고 있다.
이런 일들이 사용자의 업무 재량권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데 이런 업무지시도 무조건적으로 다 허용되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당한 업무명령의 기준에 맞아야 한다. 업무재량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권리 남용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 내가 당하고 있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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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미묘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그룹 간에 진행되는 회의에서 특정인을 비난하지 않지만 그 사람이 맡은 업무가 무엇인지 회사에서 다 아는 상황에서 그 업무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업무 실패로 회사 실적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 이런 식이다. 그것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허위사실을 위계권자에 의해 맞는 것처럼 퍼뜨리는게 반복되면 그 사람은 조직에서 ‘왕따’가 되는 거다.
경력이 굉장히 긴 피해자 같은 경우에는 어느 날부터 책임 있는 직무를 맡지 못하게 하면서 그동안 맡았던 일과 아주 조금 관련된, 말단 신입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시킨다.
이렇게 단순 업무를 시키는 건 이유가 있다. 상위급 업무는 평가가 거시적이고 만만치 않다. 그런데 단순직무로 바꾸면 평가가 쉽다. 예를 들어 오늘까지 박스 100개를 옮기라고 했는데 못 옮기면 인사고가에 반영되고, 이런 식으로 퇴출시키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또 성희롱, 성추행도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으로 꼽힌다. -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소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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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년 이상의 직장 경험이 있는 만 20세 이상 64세 이하의 성인 남녀 임금노동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 1506명 중 73.3%가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의 피해 경험 행위의 개수는 평균 10개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가 널리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직장 내 괴롭힘은 얼마나 위험한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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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위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하여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66.9%), 상급자나 회사에 대한 신뢰 하락(64.9%), 업무 능력이나 집중도 하락(64.9%),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짐(33.3%) 등의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다. 실제로 괴롭힘으로 인하여 이직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피해 노동자들의 또한 피해 경험자의 상당수가 괴롭힘으로 인하여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있었다. 특히 괴롭힘 경험의 최대 빈도가 주 1회 이상인 집단에서 자살에 대한 생각, 시도, 계획 경험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같이 직장 내 괴롭힘의 부정적 영향을 볼 때, 직장 내 괴롭힘이 갖는 위험성을 알 수 있다. - 다른 나라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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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프랑스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엄격하게 묻고 있다. 또한 사용자의 괴롭힘 의도를 단정하기 어려운 경영‧관리 운영상 경영방식도 괴롭힘으로 간주하는 법리를 마련했다. 예방조치에 관해서도 사용자에게 광범위한 책임을 지우고 있으며, 괴롭힘 행위 발생 시 종업원에게 사용자에 대한 문제 제기 및 제소권을 부여하고 있고, 노조에게 이에 대한 소송대리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일본은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별도의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일본후생노동성은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현장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로 인식하고 예방 및 피해 구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 내가 잘못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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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아니다. 피해자는 누구라도 될 수가 있다. 실제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고 정상적인 성과를 내던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회사에 천억원대 수익을 창출한 분들도 있다. 소송과정에서 피해자의 실적을 조작할 정도로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원인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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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대부분 조직의 필요에 의해 생긴다. 피해자가 회사에서 효용성을 다했다거나, 연봉을 깎고 싶다거나, 회사에서 정리를 하고 싶다거나 이런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경영을 하는 도구의 방편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활용하기도 한다. 임원정리, 임금삭감, 배치전환, 조직통제 등을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조직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을 잘 들으라는 거다.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거나 또는 회사에 대해 말 많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유도 있다. 조직 문화 자체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친다. -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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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일단 첫째로 내가 괴롭힘을 당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적극적인 맘을 가지고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피해자는 괴롭힘 당하는 상태가 이미 상당히 지난 상태에서 전문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 조기에 대응한다면 보상을 받거나 법률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세번째는 괴롭힘의 양상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큰 문제가 상당기간 지나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추천하는 방법은 업무 일지 작성이다. 또 상시적인 녹음, CCTV 등 기록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종이로 된 문서는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미묘하게 업무명령을 통해도 일어나기 때문에 그 업무가 왜 부당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입증할 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게 제일 안타깝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하면 입증이 불가능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적극성을 가지고 너무 늦지 않게 행동에 나서줬으면 하는 게 대리인들의 바람이다. - 직장 내 괴롭힘을 상담할 수 있는 창구는 얼마나 마련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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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일반 노동상담 창구는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게 있다. 그런데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직장갑질 119’을 통해 상담을 받고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상담이 들어온다. 이 이야기는 공공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상담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지금 보면 현장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국가로부터 상담서비스나 조력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방안이 충분히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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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노무사첫째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법적 개념이 생겨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이슈화 된 지는 꽤 시간이 흘렀고,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는 법안은 4~5개가 발의됐는데 아직 입법된 것은 없다. 두번째로는 피해자들의 심리적 치료도 병행할 수 있는 심리상담센터나 단체가 있어야 한다. 저희도 전문적으로 피해자를 돌볼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나 단체를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김동현 변호사직접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들이 이뤄져야 하는데 우선은 사회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군대식 문화에 있는 ‘견뎌야 된다’는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을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는 것을 명확하게 천명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 아직 직장 내 괴롭힘은 애매한 문제라 법 제정은 이르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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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겠다는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움직임이다.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올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폭력에 대한 조약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진행됐고, 지금 프랑스, 일본, 캐나다, 북유럽에서는 이미 법으로 제정됐다. 헌법도 노동환경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있다. 일터가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고 인격권이 실현되어야 하는 공간임을 구체화하는 것은 이례적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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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기획
직장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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