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빛낼 새 얼굴을 기다립니다

[새소식]

신입사원 원서 접수가 마감됐습니다. 1차 합격자 발표는 1월 9일입니다.

신입사원을 모집합니다

< 민중의소리 >가 새로운 얼굴을 모집합니다. 민중이 웃을 때 함께 웃고, 눈물 흘릴 때 슬퍼할 줄 아는 언론,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는 바른 언론이 되고자 합니다. 진실을 기록하고 현장의 생생함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합니다. 인터랙티브 뉴스, 카드형 기사, 타임라인 기사 등 뉴미디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자 합니다. < 민중의소리 >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채용안내

○ 모집부분 :
취재기자, 영상기자, 웹디자이너
○ 모집기간 :
2014년 12월 29일(월) ~ 2015년 1월 7일(수)
○ 지원자격 :
없음
○ 제출서류 :
당사 지원서(첨부파일)를 내려받아 작성하고, 파일명에 본인 이름(예시 [홍길동]입사지원서)을 넣어서 abc@vop.co.kr로 보내주세요. 웹디자이너의 경우 포트폴리오를 첨부해주세요.
입사지원서 다운로드(hwp)입사지원서 다운로드(MS워드)
○ 취재기자, 영상기자 전형일정 및 절차
1월 9일 1차 합격자 발표 모집기간 내에 제출한 지원서를 바탕으로 서류심사
1월 13일 실무 및 현장 평가 당일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자유 형식의 글 작성 (총 3시간)
필기시험 논술 (총 2시간)
1차 면접 최종면접 전단계로, 민중의소리-지원자 간 이해·소통을 위한 현직 기자들과의 면접 (총 2시간)
1월 20일 최종 면접 임원진과의 면접, 1차 시험 합격자에게 추후 개별 연락
1월 22일 최종 합격자 발표 채용 홈페이지에 공지 및 개별연락
○ 디자이너 채용일정 및 절차
1월 9일 1차 합격자 발표 모집기간 내에 제출한 지원서를 바탕으로 서류심사
1월 14일 대면 면접 관계부서 업무 담당자와 심층 면접
1월 22일 최종 합격자 발표 채용 홈페이지에 공지 및 개별연락
○ 급여 및 업무환경
- 수습기자, 수습디자이너 3개월 후 정기자, 정규직 디자이너 채용
- 정규직 채용시 4대보험 및 급여는 사내규정에 따름
○ 입사지원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경우 합격을 취소합니다.
○ 취업보호대상자 및 장애인은 관계법령 등에 따라 우대합니다.
○ 문의 : abc@vop.co.kr

민중의소리 발자취

민중의소리 부서소개

정치부

국회 바닥에 앉아서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들

정치부 기자들은 주로 국회를 출입하며 정치권 소식을 전합니다. 여야가 협상을 벌이거나 각 당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가 있을 때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회의장 밖에서 소위 ‘뻗치기’나 ‘귀대기’를 하기도 합니다. 장관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하면 산더미 같은 문서에 파묻히거나 발품을 팔면서 검증 작업을 진행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때는 주요 후보들을 쫓아다니면서 어떤 소리를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기록하고 지켜봅니다. 거리, 시장을 비롯해 심지어 섬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통통배를 타기도 합니다. 또한 발품을 팔면서 후보들에 대한 민심을 열심히 듣고 기록합니다. 후보들에 대한 검증 작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거 관련 취재를 몇 가지 되짚어 보면, 2012년 총선 때는 포항에 가서 ‘제수씨 성추행’ 의혹 파문에 휩싸인 김형태(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민심 취재를 통해 칼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취재를 했던 정치부 최명규 기자는 “‘제수씨 성추행하려면 포항 가면 되고’, 이런 소리까지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라는 주민의 말이 여전히 귀에 맴돈다고 합니다.

그해 대선 때는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전태일 열사 유족과 쌍용차 노조원들에게 막힌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후보의 동선을 쫓기 위해 기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미친듯이 뛰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2014년 6.4 지방선거 때는 정몽준(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부인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이 미개” 발언으로 파문에 휩싸인 아들을 두둔하는 영상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정치부 기자들에게 ‘선거’란 다이내믹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민중의소리 정치부는 국회출입기자 뿐만이 아니라, 외교부와 통일부 출입기자도 두고 있습니다. 국회출입기자들이 매의 눈으로 권력자들을 취재한다면 외교부와 통일부는 남북관계를 포함해 지구촌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남북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통일부의 경우 장기간의 ‘비수기’를 겪고 있지만 남북관계 ‘성수기’를 대비하여 늘 매의 눈으로 주시, 부처 출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민중의소리는 2014년 해외로는 처음으로 뉴욕 주재 특파원을 두게 됐습니다. 저널리스트 연륜과 한미 양국에 걸친 인적 유대를 가진 김원식 특파원은 생생한 미국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건의 미국 정보공개 내용을 바탕으로 단독기사를 수차례 내는 등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미국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백인 경찰의 비무장 흑인 사살 등 미국 내 시의적인 소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부

정혜규 사회부장

박신혜와 이종석 주연의 드라마 ‘피노키오’, 유지태와 박민영 주연의 드라마 ‘힐러’ 등 기자생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을 포함해 새내기 기자들은 자유롭고 멋진 직업이라고 감탄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자유로운 직업이라기보다 매우 피곤한 직업입니다. 자신의 몸에 달린 더듬이를 24시간 내내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더듬이를 세워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민하게 관찰하고 신경 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사건 사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감을 늘 유지해야 합니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다가도,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도 사건이 터지면 달려갑니다. 심지어 가족의 아픔을 옆에서 달래주기 어려울 때도 생긴답니다.

민중의소리 사회부는 경찰팀이 맡는 사건 사고 뿐 아니라 노동, 교육, 환경, 그 외 시민사회까지 폭넓게 취재합니다. 이를 위해 민중의소리 기자들은 경찰서를 출입처로 하고 있습니다. 경찰서 출입은 서울지방경찰청-경찰청 본청-일선 경찰서 출입으로 나뉩니다. 현재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는 ‘캡’(경찰팀장)이 맡고 있으며, 경찰청 출입기자는 ‘바이스’(부팀장)가 맡고 있습니다. 일선 경찰서 출입기자는 일진-이진으로 나뉩니다.

민중의소리 사회부 기자들은 약자의 편에 서있습니다. 올해 가장 큰 슬픔을 안겼던 세월호 참사 때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는 빛났습니다. 당시 민중의소리는 철저히 유가족의 감정, 입장에 입각해 취재를 했습니다. 대규모 참사 속에서 사고 당사자인 가족들 상황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타 언론들이 정부가 발표하는 왜곡된 수습 상황을 보도하는 데 주력한 반면 민중의소리는 정부가 거짓 발표했던 부분에 대한 진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중에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보도했습니다.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의 예민하고 유동적인 역할로 인하여 인체가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듯이, 민중의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 중추신경 역할을 하는 기자들이 있다면, 지역에는 말초신경 역할을 하는 지역 주재 기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산, 광주, 경남 창원 지역에서 각각 뛰고 있는 기자들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부산에서 뜨거운 소식을 수혈해 보내는 김보성 기자는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2012년 노동자 최강서 씨의 죽음 등 한진중공업 투쟁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광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역에서 오랜 기간 언론 분야 일을 맡아오며 폭넓은 네트워크를 자랑하고 있는 광주 김주형 기자는 노동자, 농민들의 생생한 활동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경남에서 뛰고 있는 구자환 기자는 한국 주요 언론 중 밀양 송전탑 문제를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전문기자’로 불릴 만큼 수차례 단독과 특종을 냈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2012년 지역 환경운동연합의 녹색언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민중의소리 사회부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약자들을 대변하거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보도를 해왔습니다. 통상 사람들은 ‘주류’라고 자칭하는 여러 언론들을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사회만 접하지만, 실제 다수의 민중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억압받으며 살아갑니다. 저희 사회부는 민중들이 사회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되는 역할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보도의 의무입니다.

편집부

고희철 편집부장

심장은 강렬한 펌프질을 24시간 멈추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혈액의 이동을 빠르게 했다가 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를 이동시켜 인간의 신체가 원활하게 움직이게 합니다.

민중의소리 편집부는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각 부서에서 취재해 송고해 놓은 기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펌프질 하여 독자들에게 유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부는 독자와 가장 가까운 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뉴스 유통을 넘어서서 취재부서에서 나오는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또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편집부는 민중의소리 기사가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되거나, 독자들이 활발하게 반응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부서입니다.

하지만 매체의 중심부인 만큼 책임도 큽니다. 한 매체의 편집은 매체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아주 작은 오타 등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쏟아지는 기사들, 활자들에 대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속보를 비롯해 모든 이슈에 민감해야 되기 때문에 타 부서와 상관없이 어디서든 일이 터지면 편집부도 덩달아 바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부는 엉덩이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타 부서와 달리 하루 종일 사무실 의자와 합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조량을 적게 흡수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근육은 줄어들고 살은 늡니다.

그렇지만 편집부는 심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펌프질을 통해서 조회수와 기사 공유수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뉴스 창구를 확장한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독자를 끌어 당겼습니다. 특히 SNS에서 언론사 중에 손에 꼽힐 만큼 영향력을 갖게 된 게 성과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가 주최한 2014년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주목해야 할 뉴스사이트’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문화부

문화예술인을 만나는 일이 문화부가 하는 일입니다

문화는 돈이 많고 여유롭고 고지식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배고프고 지치고 외롭고 고된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실제로 문화는 험악한 세상 속에서 힘든 사람들끼리 같이 낄낄거리기도 하고 어깨를 다독여주게 만들어 준 교두보 같은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민중의소리 문화부는 이런 가치에 입각하여 운영됩니다. 국가, 권력, 힘 있는 자들과의 싸움에서 지친 사람들 옆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혹은 그런 사람들이 만든 공연이나 작품을 기사화합니다.

2012년과 2014년, 지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유쾌한 공연을 선보이는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이야기를 담기도 했습니다.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로부터 연극탄압을 받은 서울연극협회를 심층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중의소리 문화부는 문화가 저변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신경 씁니다. 즉 고급문화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사람들도 함께 웃고 즐기고 위로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문화부에서 중점적으로 배출하는 전시 기사와 공연 기사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문화를 접하기 어렵거나, 예술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도 쉽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전시 공연 기사 등을 보도해 왔습니다. 특히 문화부에서 배출한 책들도 문화의 대중화와 스펙트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책 ‘밥줄 이야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 책은 아주 보통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유명인사, 권력자, 걸출한 스타도 아니지만 사회 저변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책 ‘밥줄 이야기’가 문화 확대에 기여했다면 앞으로 독자들을 찾게 될 공연 관련 책 ‘진짜로 연극인 되기(가제)’는 문화 스펙트럼 확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공연 관련 서적은 많지만 공연계를 주름잡는 극단 대표와 연출가들의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책은 많이 없습니다. 이 책이 그 스펙트럼의 한 획이 되어 독자들이 공연을 쉽게 접하고 이해하는데 역할할 것으로 보입니다.

민중의소리 문화부 기자는 유명인사 인터뷰를 통해서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유명 인사의 ‘스타성’이나 ‘마스크’를 내세운 휘발성 강한 기사가 아니라 정부와 권력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문화 인터뷰 기사를 생산합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세월오월’을 그린 홍성담 화백의 인터뷰를 통해서 박근혜 정부를 진단하기도 했고, 다큐 ‘항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서 조선적 입국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도 했습니다. 물론 공연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을 통해서 현 공연계 분위기에 대해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민중의소리 문화부는 가슴은 뜨겁게 그리고 머리는 차갑게 하여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부 기사 생산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사진부

어떤 현장에서나 빛나는 사진기자

칼날처럼 예리하고 정확한 사진 한 장은 진실을 캐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부조리에 대한 진실, 저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진실 등을 건지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소리 사진부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 농민 집회에서 김철수 사진 부장이 찍은 사진 한 장이 그런 경우입니다. 당시 경찰 폭력에 의해 농민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던 막막한 상황 속에서 농민의 넋은 억울함을 풀지 못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가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어깨 탈골을 유발시킬 만한 엄청난 카메라 장비를 들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사진부는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갑니다. 그리고 진실 규명을 위한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영상부

한국을 기록하는 것, 영상부가 하는 일입니다

갑작스런 부친상을 당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버지와의 기억을 많이 남겨 놓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다른 친구는 당장 집에 가서 아버지와 사진을 많이 찍어놔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친상을 당한 친구가 다시 말합니다. 사진 말고 동영상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순간을 영상으로 담으면, 그때 아버지의 체취, 숨결, 분위기를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민중의소리 영상부는 약자들의 소리, 숨결, 체취, 고함, 투쟁의 목소리를 생동감 있게 담아냅니다. 권력의 압제와 통제에 가려져 느낄 수 없었던 약자들의 소리를 영상으로 생생하게 담습니다.

정웅재-윤보중 기자의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 취재가 그런 경우입니다. 두 기자와 함께 영상부는 생전의 황유미 씨를 직접 만나 첫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이는 삼성 횡포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팽목항에서 자식들을 잃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영상 속에 담았습니다. 각 부서를 포함해 타 언론이 보도했던 것과 달리 처참했던 팽목항의 진실과 현장의 민낯을 보도했습니다.

민중의소리 영상부 카메라는 24시간 ‘on’상태입니다.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영상부 기자들은 늘 긴장 상태이고 업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민중들이 움직인 현장엔 늘 민중의소리 영상 카메라가 따라다녔습니다.

힘든 만큼 내로라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민중의 숨결을 영상 속에 담아내고 공론화한 것입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당시 발 빠른 취재로 ‘의정부 여고생들의 눈물시위’,‘장갑차 언니의 눈물’ 등을 현장 보도, 이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해 겨울 여중생 촛불시위를 인터넷 생중계하며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광우병 촛불시위 등 굵직한 현장을 전했습니다.

앞으로도 영상부는 국민이 잊어서는 안 될 중요 사안들에 대해 불씨를 지피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아나운서부

왼쪽이 정혜림 아나운서, 오른쪽이 강민선 아나운서입니다.

아나운서는 언론계의 꽃입니다.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부는 타 언론사 아나운서와 조금 다릅니다.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들은 탄탄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타 방송국에서 주로 아나운서들이 피디와 작가들이 만들어준 공간에서 진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민중의소리에서는 아나운서가 피디와 연출, 작가, 진행까지 모두 다 맡아서 합니다.

소위 ‘멀티태스킹’이 돼야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내실과 외실이 단단한 아나운서가 됩니다. 무엇보다 누군가 만들어준 프로그램이 아닌 아나운서 자신의 진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하여 어떤 아나운서도 그 아나운서의 자리를 침범하지 못합니다.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는 아나운서는 국내에서 몇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방송을 통해서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랑받지만, 그만큼 직접적인 분노의 ‘타깃’이 됩니다. 날선 비난을 받아도 매체의 얼굴이기 때문에 티 내지 않고 방송을 해야 하는 것이 아나운서의 숙명입니다.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도 그래왔습니다.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들은 국내 팟캐스트 시장에서 국민TV와 함께 대표 방송국으로 자리매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실제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들은 한국 방송계에 없는 지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넷 언론사로서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곳들은 있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아나운서를 육성하고 자체 프로그램을 생산해내는 역량을 갖춘 곳은 민중의소리 뿐입니다.

또한 민중의소리 아나운서부는 앞서 언급했듯 아나운서들이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육성합니다. 지상파 아나운서 외에는 정규직 아나운서가 거의 없는 열악한 방송 환경에서 지상파보다 자유롭고, 개개인을 방송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뉴미디어팀

콘텐츠 기획과 디자인, 웹기술을 결합하는 팀입니다

뉴스와 언론의 지형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거엔 지면 위주로 뉴스가 전달됐다면 최근엔 SNS라는 유통방식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기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 기반했던 뉴스 유통과정에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성장하면서 뉴스트래픽의 상당량이 SNS로 옮겨갔고, 이에 기반해 새로운 미디어들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2년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이라는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텍스트와 멀티미디어, 웹 기술이 결합된 이른바 ‘인터랙티브 디지털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다소 생소해 보이는 개념이지만 이미 2013년부터 세계 유수 언론들이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2014년 한국까지 번졌습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조응하기 위해서 민중의소리 뉴미디어팀이 생겨났습니다. 민중의소리 콘텐츠의 형식과 생산방식, 유통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미디어 환경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선도적으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뉴미디어팀은 펜기자, 영상기자, 사진기자들과 팀을 이뤄 인터랙티브 기획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타임라인, 카드형 이슈탐구 등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형식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2014년 민중의소리는 페이스북 팬 20만 명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방송을 제외하고 경향신문, 시사인에 이어 종합언론사로는 세 번째로 2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기획물이 11건, 인터랙티브 인터뷰가 20건, 이슈탐구 기사가 9건, 타임라인 기사가 2건 제작됐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인터랙티브 인터뷰, 이슈탐구, 타임라인 등의 기사는 ‘시스템’으로 제작돼 앞으로도 기자가 생각만 하면 자기가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Q. 민중의소리 기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고, 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파헤칩니다. 민중의소리는 ‘작지만 강한 언론’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인터넷 언론사이지만 경찰청과 함께 외교부, 통일부 등 정부 부처에도 출입하고 있습니다. 출입처는 계속 확대할 예정입니다. 보도 강화를 위해 인터랙티브 뉴스, 카드형 기사, 타임라인 기사 등 새로운 형식의 선보이고 있습니다.
Q. 특정 정치세력의 입장만 대변한다?
민중의소리는 민중이 웃을 때 함께 웃고, 눈물 흘릴 때 슬퍼할 줄 아는 언론,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는 진보 언론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된 언론사입니다. 기자들 개개인이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성향도 다릅니다.
Q. 공인영어 성적이 없으면 지원할 수 없나요?
스펙보다 열정과 노력을 우선시 합니다. 공인영어 성적 없어도 지원이 가능합니다.
Q. 학력 제한이 있나요?
민중의소리 기자 중에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기자도, 대학 입학을 포기한 기자도 있습니다. 학력보다 자신의 뚜렷한 소신과 가치관이 민중의소리 기자로서 가져야 할 자격입니다.
Q. 월급이 20만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마요. 최저임금보다는 많습니다.
Q. 전형 일정이 궁금합니다.
맨 위를 보세요.
Q. 지원 자격에 어떤 제한이 있나요?
잃어버린 소신, 퇴색된 열정, 꺾인 의지로는 쉽지 않겠죠?
Q. 합격자는 어디서 근무하게 되나요?
서울(본사)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충분한 훈련을 거친 뒤 지역 취재 기자를 희망할 경우 고려할 수 있습니다.

선배기자들의 편지

민중의소리 정기자가 되려면…

민중의소리의 정기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결코’ 녹녹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절망의 순간의 연속이었죠. ‘대한민국 대표 진보언론’인 민중의소리의 기자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간략히 적어보려 합니다. 편지보기편지닫기

민중의소리 신입기자 옥기원입니다.

신입기자 옥기원은 혹독한 수습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민중의소리 정기자라는 칭호를 얻게 됐음을 신고합니다. 충성~

민중의소리의 정기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결코’ 녹녹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절망의 순간의 연속이었죠.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진보언론’인 민중의소리의 기자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간략히 적어보려 합니다.

먼저 민중의소리의 정기자가 되기 위한 제 1여정은 기자들 사이에서 ‘마와리’(일본말의 약자인데 기자들은 이렇게 씁니다)라 불리는 경찰서 출입기자의 과정입니다. 민중의소리뿐만 아니라 30여개 언론사 수습기자들이 정기자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죠. 저는 지난 2달 동안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늦은 시간과 새벽에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경찰서에서 사건이나 사고가 맨 처음 조사되고, 이곳에서 가해자, 피해자 등을 만나서 보도할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취재한 서울시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 역시 마와리를 돌면서 파악한 내용에서 시작된 기사입니다. 경찰서에서 세모녀의 집주소를 파악한 후 사건 현장에 찾아갔고, 치열한 취재과정(?) 중에 세 모녀가 생전에 기록한 가계부와 가족사진 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중의소리 독자들께 세 모녀가 10원짜리까지 아껴가며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상세히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민중의소리 기자가 되기 위한 제2 여정은 수많은 선배가 진행하는 혹독한 교육 커리큘럼을 버텨내는 것입니다. 마와리를 돌면서 2~3시간만 잘 수 있는 상황에서 몽롱한 상태로 선배들의 교육을 듣는 과정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고행이었습니다. 졸다가 혼나는 과정의 연속이었죠.

또한 기사를 송고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에서 단 1분이라도 지연될 때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선배의 불호령은 저의 모든 신경들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노숙인터뷰, 지리산 산행, 음주 마와리 등등 말하려고 하면 끝도 없을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2달 간 민중의소리의 수습교육을 마치고 제가 정기자가 됐다는 사실이죠. 독자들께 민중의소리가 생각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전달할 수 있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습기자 기간의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 할 수 있는 민중의소리의 옥기원 기자가 되겠습니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타 매체보다 더욱 양질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2014년 3월.

수습 기간 동안 무척 신났어요

기자를 꿈꾸던 사람들은 다들 “내가 쓴 기사로 사람들이 이 문제를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중의소리 수습 기간 동안 기자로서 바라던 모습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민중의소리 기자로서 매일매일 현장을 지켜야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편지보기편지닫기

‘수습’이라는 이름표를 갓 뗀 최지현 기자입니다.

지금 독자들이 보시기에 저는 ‘민중의소리’에서 새로운 얼굴이겠지만, 저는 지난 수습기간에 이런저런 현장도 가보고 기사도 조금씩 써왔습니다. 물론 아직은 서툴기에 기사 하나가 탄생하는 데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요.

수습기간에 있었던 일, 느꼈던 것들을 말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제가 갔었던 ‘민중의 현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의 수습기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정말 많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값 등록금 촛불이 시작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전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했습니다.

기자를 꿈꾸던 사람들은 다들 “내가 쓴 기사로 사람들이 이 문제를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수습이었던 올해(2011년) 상반기에는 사회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습니다.

누군가가 기사를 썼든 안 썼든, 기자로서 바라던 모습이 제 눈앞에 펼쳐졌던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학생들이 외쳤던 등록금 문제에 대해 국민의 90% 이상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했고, 노동자들이 붉은 머리띠를 매고 싸웠던 정리해고 등 노동 문제에 분노한 수천 명의 국민들이 버스를 타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러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너무 신났습니다. 물론 매일매일 이어지는 촛불로 ‘민중의소리’ 기자들 역시 매일매일 현장을 지켜야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한번은 “오늘 그 현장으로 취재 갈 때 나를 빼놓고 가면 어쩌지?”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민중의소리’, 말 그대로 민중의 소리를 듣고 내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만큼 ‘민중’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주실 때 ‘민중의소리’ 기자들도 더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고 한편으로는 기자로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수습을 벗어나 기자가 된 저도 열심히 민중의 소리를 듣고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민중의소리’라면서 그것도 몰라?” 하시면서 소소한 이야기라도 저에게 많이 들려주세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2011년 7월.

민중의소리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민중의소리에서 쏟아지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 일명 ‘인터랙티브 뉴스’라는 것인데요. 독자들과 교감하는 새로운 형의 콘텐츠입니다. 보통 뉴스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텍스트를 읽는 수준이었는데요, ‘인터랙티브’ 뉴스는 동영상이나 사진, 음성파일 등 멀티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고 각종 기능들을 통해 독자들의 행동에 콘텐츠의 모양이 바뀌는 ‘반응형’ 뉴스입니다. 편지보기편지닫기

안녕하세요. 뉴미디어팀장 김동현입니다.

요즘 민중의소리에서 쏟아지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 일명 ‘인터랙티브 뉴스’라는 것인데요. 독자들과 교감하는 새로운 형의 콘텐츠입니다. 보통 뉴스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텍스트를 읽는 수준이었는데요, ‘인터랙티브’ 뉴스는 동영상이나 사진, 음성파일 등 멀티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고 각종 기능들을 통해 독자들의 행동에 콘텐츠의 모양이 바뀌는 ‘반응형’ 뉴스입니다.

예를 들면 스크롤을 내리면 화면 한 가득 사진이 바뀐다거나, 동영상이 자연스럽게 플레이 되기도 하고요. 음성파일을 자막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웹기술을 뉴스에 접목한 것이죠. 이런 뉴스 스타일은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요. 시작은 뉴욕타임스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언론사들이 하나 둘씩 내놓고 있답니다.

민중의소리도 올해 들어 ‘인터랙티브’ 뉴스를 속속 내놓고 있답니다. 그걸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처음 내놓은 인터랙티브 뉴스는 ‘內亂:내란음모 사건의 모든 것’이라는 뉴스인데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시작부터 재판까지 각종 데이터와 논쟁 지점들을 정리한 뉴스입니다. 대략 원고지 400매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의 기사 묶음입니다. 동영상도 많고 사진, 각종 데이터들을 보기 쉽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기사 '內亂:내란음모 사건의 모든 것'보기

다음으로 의료민영화 문제를 알기 쉽게 다룬 ‘무전질병의 시대’를 내놓았습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겪을 수 있는 의료민영화의 문제점을 가상현실로 꾸며봤고요,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의료민영화의 쟁점들을 Q&A로 풀어봤답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와 약사들의 친절한 설명 동영상도 함께 들어있답니다. 기사 '무전질병의 미래'보기

인터랙티브 인터뷰 시리즈도 시작했답니다. 텍스트와 사진만 있는 지루한 인터뷰가 아니라 중간중간에 화면 한 가득 영상도 들어가고요, 컴퓨터 화면 한 가득 사진을 배경으로 처리해 보기 좋게 만들었답니다. 지금까지 4편의 인터랙티브 인터뷰가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랍니다. 인터랙티브 인터뷰 리스트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이슈인데요. 이 사건의 첫 재판 음성파일이 공개됐습니다. 음성파일을 자막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만든 ‘눈물의 법정’도 새로 나온 인터랙티브 뉴스입니다. 원래 공개된 파일은 21분짜리 긴 파일이었는데요, 주제별로 나누어 2~3분씩 편집했답니다. 그리고 그냥 들으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수 있어서 자막을 함께 넣었답니다. 한 번 보세요. 기사 '눈물의 법정' 보기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올해 민중의소리의 보도 혁신 방향의 일환이랍니다. 모바일로 뉴스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시대에 PC뉴스는 PC에서 보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랍니다. 세계적 추세에 맞춰 화려하고도 보기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죠.

앞으로도 민중의소리는 다양한 형태의 인터랙티브 뉴스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참여형 콘텐츠도 개발 중이고요, 복잡한 데이터를 독자들이 선택해서 알아보기 쉽게 한 콘텐츠도 내놓을 생각입니다. 많은 관심 바라고요. 응원도 부탁드립니다. 인터랙티브 뉴스 리스트

2014년 3월.

창간 14주년을 보내며

민중의소리가 창간된 지 올해로 14년이 됩니다. 민중의소리가 ‘작은 매체’, ‘우리 언론계의 소금같은 존재’에 만족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른 매체보다 훨씬 일찍 해경의 초기 대응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나 민간구난업체와 해경의 유착 관계에 관한 기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의 꼼꼼한 취재가 뒷받침된 덕분이었습니다. 편지보기편지닫기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국장입니다. 민중의소리가 창간된 지 이번 달(정확히는 15일)로 14년이 됩니다. 마침 ‘꺾어지는 해’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가득한 때라 아무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게 되었습니다. 생일이라고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특별한 음식을 해 주셨습니다. 겨울을 넘긴 김장 김치를 물에 헹궈서 메밀 반죽으로 싼 부침개였는데, 나중에 서울에 와서 보니 이걸 메밀부꾸미(?)라는 이름으로 파는 가게도 있더라고요. 강원도 산골에서는 꽤 별미였던 이걸 해 주시면서 어머니는 “이제부터는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 (생일상은) 나중에 장가를 가서 마누라에게 얻어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열 살이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특별한 도움은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민중의소리가 14년째 생일을 맞았는데 아마 저희 어머니가 보시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다른 기업이나 조직과 비슷하게 언론도 일정한 규모가 되어야 기본도 갖추면서 특종도 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기획보도도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독료(저희의 경우엔 정기 후원금)와 광고, 수익사업이 갖춰지면서 물질적으로도 안정을 이룰 수 있지요. 여기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5~6년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민중의소리가 ‘작은 매체’, ‘우리 언론계의 소금같은 존재’에 만족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장 지면만 보아도 저희는 기자들이 쓰는 의견 기사가 매우 적지요. 저는 오래 전부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해 왔고, 민중의소리 역시 독특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만 8명의 기자가 상주하면서 취재를 한 것이나, 최근 며칠간 안대희 총리 후보자의 검증과 관련해 의미있는 단독보도를 내보낸 것도 이런 저희의 방향을 보여준 일이라 자평합니다.

사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에서 방송사나 통신사와 달리 규모가 작은 매체가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매체보다 훨씬 일찍 해경의 초기 대응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나 민간구난업체와 해경의 유착 관계에 관한 기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의 꼼꼼한 취재가 뒷받침된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피해자 가족들께서도 저희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장보다 깊이 민중의소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잃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는 2005년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였습니다. 점거를 앞두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온 노동자의 목소리는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지요. 예전 기사를 찾아보면 ‘촌스러움’에 얼굴을 들기 힘듭니다. 민중의소리가 기술적으로 발전했지만 진정성이 담긴 현장의 목소리들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진보 매체가 되지는 않겠다는 민중의소리의 초심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2014년 5월

행복하고 싶죠? 27인의 인터뷰 참고 하세요

올 초부터 진행한 기획, ‘극단산책’ 인터뷰는 극단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입니다. 동시에 ‘극단산책’은 연극관계자, 배우지망생, 연출가들, 작가, 공연 홍보팀 등에게 정보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극단을 대표하는 총 27명의 대표(연출가) 인터뷰를 참고해 주세요.편지보기편지닫기

최근 타사 선배 기자가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일간지에도 연극공연을 비중 있게 실어준 편이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연극 말고도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 요즘 일간지를 봐도 문화면이 매우 다원화 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신문만 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TV, 톱스타, 유명인사 인터뷰 등이 다양하게 게재되어 있고, 연극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연 현장에서 만난 다른 문화부 기자들도 연극계가 어려운 것을 알고 있는 눈치입니다. 연극 하나만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기자들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시렸습니다. 공연계 사정을 알지만, 공연 기사만 쓰는 게 기자들 입장에서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말이 길어졌습니다. 짧게나마 소싯적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연극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해서 제가 ‘연극열사’였던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연극은 공짜표가 생길 때만 보는 것이었고, 대학 과제로 봐야할 때만 관람하는 도구적인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적게는 1만 2천원, 많게는 4만원 이상까지 지불하는 게 아까웠습니다. 불과 3~4년 전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공연 관람을 넘어서서 배우와 연출가의 삶 속을 들여다보니 연극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별 생각 없이 와서, 한 번 보고 가는 작품이 정말 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위한 연극인들의 꼬장꼬장한 발걸음이 있었기에 동시대를 대변할만한 걸출한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은 가슴이 통쾌해 지기도 하고, 묵직한 어떤 해답을 얻어가기도 하는 거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올 초부터 진행한 기획, ‘극단산책’은 극단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입니다. 너무 거창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극인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정말 주체할 수 없었던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헌사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듯합니다.

동시에 ‘극단산책’은 연극관계자, 배우지망생, 연출가들, 작가, 공연 홍보팀 등에게 정보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극단산책’이 청춘들을 위한 해답서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속에는 ‘나는 왜 태어났나’,‘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해답은 극단의 대표들의 조언이든, 아니면 극단이 토해낸 작품 속이든 독자가 찾아내길 권합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고, 일하기 싫어서 미칠 것 같고, 행복하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청춘들에게 한 줄기 해답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 초 공연부문을 담당하면서 정말 생각 없이 시작한 ‘극단산책’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극단들, 그리고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극단들까지 총 27명의 연극인 인터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신진극단 대표 3명만 남았습니다. 그럼 정말 인터뷰는 마무리됩니다.

물질과 자본,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10~40년간 극단을 이끌어 온 연극인들의 역사에 누를 끼칠까봐 기사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좀 더 잘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압박을 키웠고, ‘기사 포비아’까지 걸리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취재원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때도 있었고, 인터뷰를 거절하는 곳도 있어서 상심하기도 했었습니다.

저의 애정과 압박이 녹아있는 인터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극단을 대표하는 총 27명의 대표(연출가) 인터뷰입니다. 대표님, 연출님들의 말이든, 극단의 대표 작품을 통해서든, 험난한 이 시대를 이겨나갈 용기와 해답을 찾길 바랍니다. 힐링은 덤입니다.

◎'극단산책' 기사

[극단산책24]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 연극의 힘...‘밀양연극촌’의 비밀

[극단산책22]연우무대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오해와 진실’

2014년 10월

민중의소리 뉴욕특파원 인사드립니다

미국에서 국내 사정을 바르게 전해주는 민중의소리를 늘 보아 왔고 이제는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나름 무거운 책임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14년이란 시간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념 하나로 써내려 간 여러 기자들의 주옥같은 기사와 눈물 어린 열정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편지보기편지닫기

안녕하세요. 민중의소리 뉴욕 특파원 김원식입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국내 사정을 바르게 전해주는 민중의소리를 늘 보아 왔고 이제는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나름 무거운 책임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다가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초심이란 제가 4년 전부터 주로 한국의 인터넷 매체에 국제관계의 기사나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한 동기입니다.

지리적으로 현실적으로 갈라진 남북분단도 억울한데, 왜 우리나라 언론들은 저렇게 ‘반쪽 시각’에 치우쳐 있을까 하는 생각과 고민이 나름 여러 글을 쓰게 한 동기였습니다. 발생한 하나의 사실(fact)이 한국 언론에 전해지면서 편집되고 혹은 왜곡되는 여러 과정을 보면서 참 언론이 무섭다는 생각에 앞서 결국 저러한 왜곡이 우리 분단을 지속하게 하는구나 하는 한탄이 그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름 4년 동안 우리나라 여러 매체에 글과 기사를 써 왔지만, 그러한 거대한 보이지 않는 ‘반쪽 시각’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을까 하고 스스로 반문을 해보면 그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기가 힘들어집니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라고 민중의소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부족함을 질책해주시고 미숙함을 깨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민중의소리와 함께 일하고자 생각하면서 지난 14년 동안 민중의소리가 지나온 역사를 나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념 하나로 써내려 간 여러 기자들의 주옥같은 기사와 눈물 어린 열정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느냐는 물음의 답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우리 민중의소리를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힘이 민중의소리가 한국의 대표적 진보 인터넷 매체를 넘어 최고의 언론 매체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라고 확신합니다. 거기에 저는 작은 한발을 담갔을 뿐입니다.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에서도 민중의소리가 우뚝 섰다는 세계 언론사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데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2014년 07월